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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sr PICK] 이달의 콘텐츠_드라마 /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리뷰 (feat. 5화)

orsr 2024. 1. 29. 22:11

출처: 넷플릭스

  • 공개일 : 2023년 11월 3일
  • 장르 : 드라마, 일상, 휴먼, 의학
  • 회차 : 12부작
  • 제작사 : 필름몬스터
  • 연출 : 이재규, 김남수
  • 극본 : 이남규, 오보혐, 김다희
  • 원작 : 네이버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이라하
  • 출연 : 박보영, 연우진, 장동윤, 이정은 外 

한국식 신파 드라마의 눈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F 인간이지만 억지 스토리에는 나오던 눈물도 쏙 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처음 시작하기까지는 진입장벽이 있었다. 그러나 보고나서는 생각이 바뀌는 드라마. 억지 신파 아니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그런 드라마.

 

정신병동에 아침이 와요의 영문 타이틀은 <Daily Dose of Sunshine>이다. 직역하면 일조량. 드라마를 보고 나면 번역이 참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드라마는 하루하루 요동치는 기분을 붙잡아주는 '일조량'같은 드라마였다. 사회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가 햇볕 아래에 서서 광합성을 하고 있자면 치유되는 기분을 느끼지 않는가. 나는 이 드라마가 그랬다.

 

스토리는 정신건강의학과로 외과 3년차 정다은 간호사가 전과를 해오게 된다. 다은의 다정하고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마음을 쏟는 성향은 빠르게 돌아가야하는 간호업무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 다정한 간호사 다은은 주위 동료들에게 민폐 간호사가 되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전과를 통해 정신병동이라는 새로운 환경을 마주하게 된다.

 

여기는 커튼도 없어. 그래서 다른 병동보다는 아침이 제일 빨리 와.

 

출처 : 넷플릭스

 

스토리는 환자들의 에피소드와 정신병동 의료진들의 사연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진행된다. 드라마의 전개에 과하지 않을 정도의 선을 지켜가면서, 하지만 묵직하게 개개인이 직면할 수 있는 정신적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작품에서 다루는 정신병들은 조울증, 직장 내 괴롭힘, 공황장애, 편집증, 망상장애, 학교폭력, 가성치매, 경계성 인격장애 (이렇게 에피소드들을 쓰다보니 하나 하나 다 엄청나구나) 등이 있는데, 나에게 마음 속에 칼로 찌르듯이 파고드는 에피소드는 5화였다.


5화 인생에서 노란색 경고등이 깜빡거릴 때

5화의 주요 내용은 워킹맘들의 고충을 다루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의 맞벌이 가구의 비율은 2022년 기준 46.1%며, 18세 미만 자녀가 있는 맞벌이 가구는 53.3%이다. 자아 실현의 의미도 있지만,  맞벌이가 아니면 아이를 경제적으로 뒷받침하기 어려운 상황도 한 몫하고 있다.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본인의 커리어도 사랑하는 워킹맘들은 매일 매일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쳐나가고 있는데 그러한 상황을 너무 현실적으로 잘 그려낸 에피소드가 5화라고 할 수 있다.

 

출처 : 통계청
출처 : 통계청

 

드라마에서 워킹맘 에피의 주인공 두사람은 책임간호사 수연과 환자 주영이다.

출처 :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 간호사 수연

 

책임간호사 수연은 병동에서 맡은 업무가 많아 아이를 돌볼 시간이 부족하고, 이를 조모인 수연의 엄마의 도움으로 채운다. 그렇지만 수연의 엄마 역시 급하게 수연의 동생의 아이를 봐주러 가는 날이면, 그녀는 도움의 손길을 얻을 수 없다. 같은 반 유치원 학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계속 미안해하고 또 미안해한다. 자신의 아이를 돌봐주지 않는 본인의 엄마에게 화를 내게 되는 것은 일상이다. 열심히 아등바등 하루를 살아나가면서도 아이가 아플 때 달려갈 수 없는 수연은 점점 지쳐나간다.

출처 : 넷플릭스 유튜브 채널 / 환자 주영

 

회사원 주영 역시 업무와 양육 두 가지에 열정을 쏟아 붓는다.  어느 날, 딸이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되고 그녀는 학교에 항의를 하러가지만 이 와중에 걸려오는 업무 전화를 그녀는 쳐내지 못하고, 둘 사이에서 어느 쪽도 완벽히 수행해내지 못하는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처하게 된다. 딸의 정신 건강을 위해 방문한 정신과였지만, 현재 누구보다 정신병동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주영이었다. 주영은 본인이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가성 치매 진단을 받고 병동에 입원하게 된다.

가장 소중한 거(딸 하윤) 까지 기억에서 사라져 버리기 전에 나으셔야죠. 

 

드라마에서는 이러한 동일한 사연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가진 두 사람을 한 명은 환자, 한 명은 간호사로 그려낸다. 이를 통해서 이 문제가 특정 누군가에게만 발생하는 일이 아닌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임을 짐작할 수 있다. (드라마 후반부에 간호사인 다은이 정신병동에 입원하는 상황을 보면 더욱이 공감할 수 있다.) 열심히 스스로를 채찍질 하면서 살아가면서도 점점 짜증이 많아지고, 일은 잘 안풀리고, 미안해 할 일들만 가득한 워킹맘에게 노란 경고등이 깜빡거리고 있는 것이다.

 

주치의 민서는 환자 주영에게 처방의 하나로 메타인지 기법을 사용하여 자서전을 10장 써보길 권한다. ( 메타인지 : 자신의 생각을 객관화 하여 관찰하고 판단하는 기술 ) 이때까지 주영이 살아온 과정에 대해서 감정에 집중하여 써보는 것. 주영은 처음에는 막막하지만 어느새 술술 본인의 자서전을 써내려간다. 그리고 다음 주치의와의 상담시간에 써내려간 자서전을 쑥스러워 하면서도 당당히 내어놓는다. 이에 의사 민서는 형광펜을 내밀며 부정적인 감정에 노란 형광펜을 칠하게 한다. 주영은 천천히 자신의 자서전에 형광펜을 칠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없던 노란 형광펜의 표시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더 많은 형광펜이 자서전에 더해져간다.

 

항상 자기 자신보다 가족이나 일이 먼저셨겠죠?
그러다 보니까 시간이 생겨도 뭘 할지 모르셨을 거 같아요.
당연히 본인 감정 살필 틈도 없으셨을 거 같고.
(중략)
감정에도 근육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건강해지려고 하면 운동하듯이 마음도 훈련을 해 보는 겁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면서도 본인이 엄마 노릇을 잘 못하고 있다고 아이에게 항상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었다. 스스로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고 주위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치료를 통해서 인식하는 것이다.

 

https://youtube.com/shorts/wU6Jo2OXDW4?feature=shared

너무 애쓰지마. 너 힘들거야. 모든 걸 다 해주고도 못 해 준것만 생각나서 미안해질거고 다 네 탓 할 거고 죄책감 들거야. 네가 다 시들어가는 것도 모를 거야. 인생이 전부 노란색일거야. 노란불이 그렇게 깜빡이는데도 너 모를거야. 아이 행복 때문에 네 행복에는 눈 감고 살 거야. 근데 네가 안 행복한데 누가 행복하겠어? 

항상 아웅다웅하는 의사 민서와 간호사 수연이지만, 민서는 수연의 위태로움과 팽팽한 삶을 알아차리고, 수연에게도 자서전을 써보길 권한다. 이게 수연은 별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지만, 귀가한 수연은 스스로의 자서전을 써보고 노란 형관펜을 칠해본다. 그리고 주영이 받은 처방이 곧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사안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오프날에 신랑과 동생에게 전화하지말라는 엄포를 놓고는 엄마를 모시고 호캉스를 떠난다. 

엄마, 우리도 이런 데서 좀 자 보고 그러자.
내일 아침에 우리도 광합성도 좀 하고 아침 산책도 하고 남이 해주는 밥도 먹고.
그리고 엄마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주위를 너무 살피고 신경쓰느라, 아등바등 노력하느라 정작 내 자신 돌보기를 게을리 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러다보니 점점 무기력해지고 짜증은 넘치고 삶에 여유가 없어진다. 노란색 경고등이 깜빡이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스스로을 낭떠러지 끝으로 몰아 붙이고 있는 것이다.

 

내 자신을 돌보지 않게 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의 기반이 점점 무너지게 된다. 이럴 때 일수록 내 내면을 더 들여다 보고 보듬어줘야 한다. 노란색 경고등에 어느 새 빨간 불이 들어오기 전에 말이다.


정신병동에 아침이 와요를 보면서 시청자 마다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에피소드는 제각각일 것이다.  그렇지만 공통적으로 해당 에피소드들을 통해서 우리의 내면을 치료할 힘을 기르게 된다. 정신병동에 간 것은 아니지만, 환자들을 보면서 그들이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나의 감정에 근육들을 키워나가는 것.  그 것이 이 드라마를 통해서 내가 강하게 느끼는 바였다.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 부터 드라마에 나오는 수연과 주영은 곧 나의 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살면서도 항상 미안해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현실이 너무 각박해서 삶의 여유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 불행한 미래가 자꾸 그려졌다. 조부모의 도움 없이는 절대 아이를 양육할 수 없는 환경에 아이를 돌볼 시간적 거리적 여유가 없는 남편에 나와 멀지 않은 요소들이 하나하나 나를 건들이고 찔렀다.

 

그렇기에 더욱 해당 에피소드의 치료, 나에 집중할 것, 나를 돌볼 것이라는 대목이 더 와닿았다. 나를 돌봐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과 공존할 힘이 생기는 것이다. 나의 노란색 경고등을 놓치지 말자는 것이다. 우울함이 언제 우리를 집어삼킬지 모른다.


당신도 지쳐있지는 않나요?

어느샌가 당신도 여유없는 일상에 지쳐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 이 드라마는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는 당신이 에피소드를 보는 동안 감정적으로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는 언제나 그래왔듯 다시 툭툭 털고 일어서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내 아픔을 받아들이고, 천천히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내가 이 드라마를 추천하는 이유이다.

출처 :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