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메모/책

[orsr PICK] 이달의 콘텐츠 _ 책 📚 구의 증명

orsr 2024. 4. 29. 12:04

 


한동안 굉장히 따뜻한 나날들이 이어졌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평소보다 낮은 기온에 팔뚝에 냉기가 감돌았다. 이렇게 날씨가 꾸리꾸리한 날에는 소설이 읽고 싶다.
밀리에 서재 어플을 켜서 어떤 소설을 읽어볼까 뒤적여 본다. 요즘에는 시간이 많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에는 전혀 하지 않던 랭킹을 본다.


1위에 자리 잡은 《구의 증명》
스토리도 전혀 예상되지 않는 제목인데 그냥 바로 클릭해서 읽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바가 있다면 소설은 오늘의 날씨처럼 추적추적 온도는 낮고 습도는 높은 그런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책 소개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어.

사랑 후 남겨진 것들에 관한 숭고할 만큼 아름다운 이야기

최진영 소설 《구의 증명》은 사랑하는 연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겪게 되는 상실과 애도의 과정을 통해 삶의 의미 혹은 죽음의 의미를 되묻는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최진영은 퇴색하지 않는 사랑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고 아름다운 문장과 감성적이며 애절한 감수성을 통해 젊고 아름다운 남녀의 열정적인 사랑과 냉정한 죽음에 대해 세련된 감성과 탁월한 문체로 담아내고 있다.



책의 제목 속 '구'는 주인공의 이름이었다.
책 속의 주인공은 '구'와 '담'이 등장한다. 두 사람 모두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두 사람이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 온 두 사람이 '구'의 죽음을 겪으며 '담'이 겪는 상실감과 그들만의 애도의 과정이 담겨져있다.

누나 나이쯤 되면 계산적으로 이성을 만나게 된다고. 만나자마자 서로의 처지와 조건을 재고 따져서 견적내기 바쁘다고. 그런 만남을 반복하다보면 스스로 상품이 된 것 같고 상대 역시 상품처럼 대하게 된다고. 과정을 함께하며 서로의 됨됨이를 알아가는 걸 번거로워하고, 결과로 남은 것만 보려 한다고.

위는 소설 속에서 현대 사회에서 사람간의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각이 담겨있는 부분이다. 어느새 우리는 순수했던 관계들에서 벗어나 자신의 짝을 찾는 일에서 견적서를 내고 있다. 소설 속에서는 스스로 상품이 된 사람이라고 표현을 한다. 이러한 관계는'구'와 '담'의 관계와 상반되어 있다. 두 사람은 서로를 그런 견적서로 보기보다 함께 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두 사람은 그저 함께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이 함께하기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구'는 가난한 부모를 가족으로 두고 있다. 부모의 빚은 열심히 살아도 계속 늘어만 간다. 그리고 부모가 사라졌을 때 그 모든 빚은 '구'에게로 간다. '구'는 살고 싶어도 점점 살아가기가 힘들어진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고 싶다는 울트라 캡숑 멋진 아빠가 되고 싶다는 그의 소망은 비참한 현실 속에 실현될 수가 없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실패는 예정되어 있는 것 같고,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이미 진 것 같았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안 된다면 이번 생은 빨리 감기로 돌려주세요.
그럼 빨리 죽잖아
그럼.. 그냥 무로 돌려주세요. 아무것도 아닌 상태, 그래서 모든 것인 상태로.
돈이 나올 구멍은 나뿐임을 그자들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만족시킬 만큼 젊었고, 젊다는 것은 내게서 돈을 뽑아낼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기나길게 남았다는 뜻이었다. 처음에는 돈을 갚는다는 개념이었는데, 차차 갚는 게 아니라 갖다 바친다는, 상납한다는 개념으로 변했다. 장부에 적힌 숫자는 줄어들지 않고 늘어가기만 했다. 그들의 계산대로하면 평생 돈을 벌어 그들에게 줘야 했다. 노예가 된 것이다. 계획을 세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나는 구의 생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구의 인간다움을 좀먹고 구의 삶을 말라비틀어지게 만드는 돈이 전쟁이나 전염병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다를 게 없었다. 그건 구의 잘못이 아니었다. 부모가 물려준 세계였다. 물려받은 세계에서 구는 살아남을 방도를 찾아야 했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했을까?
 지금의 인간은 미개하지 않은가. 돈으로 목숨을 사고팔며 계급을 짓는 지금은. 돈은 힘인가. 약육강식의 강에 해당하는가. 그렇다면 인간이 동물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가. 세련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동물의 힘은 유전된다. 유전된 힘으로 강한 놈이 약한 놈을 잡아먹는다. 불과 도구 없이도, 다리와 턱뼈와 이빨만으로. 인간의 돈도 유전된다. 유전된 돈으로 돈없는 자를 잡아먹는다. 돈이 없으면 살 수 있는 사람도 살지 못하고, 돈이 있으면 죽어 마땅한 사람도 기세 좋게 살아간다.

구조적 결함을 가진 자본주의 사회는 사람을 사람답지 못하게 만든다. 희망찬 사람들도 팔다리가 꺾여지게 만든다. 돈이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세상은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사람을 몰아붙인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모순은 청년들을 N포세대로 만들고, 각박해진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혐오하게 된다.

책 소개에는 '죽음 이후 겪게 되는 상실과 애도의 과정을 통해 삶의 의미 혹은 죽음의 의미를 되묻는 소설' 이라고 되어 있는데 내 눈에는 사회 구조에 결함이 인간성을 잃게 만들었다는 사랑보다는 사회가 보였다.

그러면서 영화 두 편이 떠올랐다.
《소공녀》와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그 것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한 모금의 담배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친구만 있다면 더 바라는 것이 없는 3년 차 프로 가사도우미 ‘미소’. 새해가 되자 집세도 오르고 담배와 위스키 가격마저 올랐지만 일당은 여전히 그대로다. 좋아하는 것들이 비싸지는 세상에서 포기한 건 단 하나, 바로 ‘집’. 집없이 자신만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현대판 소공녀 ‘미소’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미국 빈민층 가정의 미혼모가 아이를 키우는 현실을 어린이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영화인데, 영상미는 아름답지만 행복하게 모녀가 살아가기에는 현실이 전혀 녹록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돈으로 모든 걸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돈이 없다면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회에 놓여 있다.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가치를 가지기 위해 돈은 선택재가 아니고 필수재다.

그렇기에 필수재인 돈이 없는 상황에 놓여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부분이고 그 부분이 영화나 책으로 만들어졌을 때 더 크게 와닿는 부분인 듯 싶다.

소설 속 '구'와 '담'의 사랑이 누군가에게는 기괴해 보일 수 있는 사랑이다. 하지만 제일로 기괴한 것은 그들을 사지로 몰아붙이는 지금 바로 현대 사회가 아닐까.

순수한 마음을 담아 서로를 위하는 존재들이  몸 하나 비빌 곳 있는 보금자리가 있는 그런 살만한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추적추적 비 오는 날 소설도 굉장히 추적추적한.
우울한 날 더 우울하게 만들어버리는 그런 소설.
우울함을 찾고 싶다면 한번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