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것에 대해 쓰겠다고 결심한 봄에 내가 처음 한 일은 목록을 만든 것이었다.
2018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작으로 선정된 이 작품은, 2013년 겨울에 기획해 2014년에 완성된 초고를 바탕으로 2016년 5월에 처음 펴냈던 책이다.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를 무력하게 만드는 이 소설은 한 권의 시집으로 읽힘에 손색이 없는 65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흰' 것에 관한 65편의 이야기를 엮여서 만든 자전적 소설인 '흰'은 그 기저에 한강 작가와 작가의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맞이한 언니의 스토리가 깔려서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인상 깊었던 페이지와 느낀 점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배내옷>
외딴 사택에 살고 있었던 한강 작가의 어머니는 산달이 되기도 전에 양수가 터졌고 홀로 아이를 출산하였으며 그 아이는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죽었다.
그 아기는 부부의 첫 아이이자 한강 작가의 언니이다.
낳자마자 아이를 잃은 아픔이 글 한 글자 한 글자마다 튀어 올라와 내 마음도 같이 할퀴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한강 작가는 곁에 없는 언니의 부재를 통해서 느끼는 그리움과 삶과 죽음의 경계에 관하여 소설에 담아냈다.
<언니>
언니의 존재를 가정하며 언니를 그리워하는 부분이 서술된다.
보풀이 약간 일어난 스웨터와 아주 조금 상처가 난 에나멜 단화를 물려주는 언니.
엄마가 아플 때 코트를 걸치고 약국에 다녀오는 언니.
가시가 발바닥에 박힌 나를 치료해 주는 언니.
사소한 에피들이지만 서로에 대한 애정이 넘쳐야만 보이는 것들이기에 더 와닿았던 것들이다.
<소복> , <연기>
결혼식을 앞둔 이들은 산 자에게는 비단옷을, 망자에게는 무명 소복을 선물한다는 얘기에 결혼을 준비하는 동생의 부부는 망자가 된 그녀의 언니를 위해 무명옷을 준비하고 작가는 그 옷을 태우는 일에 함께 한다. 넋이 그 옷을 입어주길 바라며.
이제 세상에 같이 없지만 이를 통해서 언니는 곁에 없어도 함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넋을 기리는 가족들의 마음은 그녀가 날개옷처럼 걸쳐주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 좋았던 페이지들
<어둠 속에서 어떤 사물들은>
너무 하루가 지치면 밤에 잠에 들려고 해도 쉽게 잠이 들어지지가 않는다. 그럴 때면 점점 어둠에 눈이 익숙해져서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도시의 빛이 스며 들어와 뭔가의 형상이 되곤 한다.
<파도>
뭍과 물이 만나는 경계를 바라보며 우리 삶이 찰나에 불과 함을 느끼고 수천수만의 반짝임과 뒤척임을 생각한다.
우리가 바닷가에 앉아서 멍하니 파도치는 모습만을 바라보는 건 그런 이유가 아닐까.
<얇은 종이의 하얀 뒷면>
<갈대숲>
더 나아가고 싶은가.
그럴 가치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는 답을 내 안에 간직하면서도 일단은 걸어가고 있는 중. 가끔은 뭐 하고 있는 건지 갈대숲에서 길을 잃은 게 아닐까도 싶지만 우선은 한 걸음씩 걷는 중
가족에 대한 마음을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하고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세상에 두 시간 찾아왔던 작가의 언니를 생각하면서 여러 번 눈물이 나기도 했다. 그 넋이 너무 외롭지 않게 편안하게 쉬기를 바라면서. 🙏
그리고 한 편으로는 생각해 본다.
나에게 '흰'이라는 주제가 주어진다면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몰티즈 구름 치아 눈 솜사탕 쌀밥 곰팡이 야구공 새치..
머리를 둥둥 떠 가는 주제들
그리고 색채를 담아 글쓰기도 하나의 좋은 글감이란 생각도 들었다. 익숙하지만 다양한 우리의 일상에서 색은 빠지지 않는 소재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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