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안소정
출판 : 앨리스
발행 : 22.11.23
카테고리 : 에세이
책 소개
오늘 나의 꿈은 좋은 어른이 되는 것
비혼, 지방러, 온천 명인, 회사원, 에세이스트... 평범한 듯 비범한 안소정의 적립식 성장기
귀여운 표지와 책 제목에 끌려 선택하게 된 책.
어쩐지 우리 눅눅 씨가 디자인한 썬데이마켓 인터뷰 표지가 생각나기도 했던 귀여운 표지에
'좋은 어른'이라는 단어는 나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대체 좋은 어른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길래 저자는 이러한 제목을 선택했을까?
책의 목차는
나답게 일하기
나만의 공간을 찾기
작은 사랑을 하기
세상과 연결되기
총 네 가지 순서로 진행이 된다.
'좋은 어른'이라고 하면 나에게 뭔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젊은이 느낌이었는데 그거랑은 좀 아주 많이 빗나간 듯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책에서 '좋은 어른'이란 '나'답고 나를 아끼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열심히 살아가는 한 사람을 지칭하는 듯싶다.
지방러, 회사 생활 10년 차 회사원, 비슷한 나이대의 저자에 공감대를 많이 느끼기도 했지만, 엥? 싶은 부분도 간혹 가다 있었던 에세이이기도 하다.
우선 에세이에서 좋았던 두 부분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하나는 부캐에 관한 것이고, 하나는 일에 관한 것이었다.
책에서 이 부분은 내가 스스로에게 느끼는 강박관념과 가장 유사하여 많은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나는 그 지점이 부캐 열풍의 핵심이라고 본다. 각자가 처한 현실에서의 불안을 해소할 방법, 새로운 탈출구로서 부캐가 급부상했다고 말이다. 기성세대는 MZ 세대나 90년대생을 마치 듣도 보도 못한 신인류처럼 여길 때가 있는데, 그들이 지금과 같은 사회 환경을 온몸으로 겪어내야 했다면 아마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악착같이 칼퇴해서, 1분 1초라도 회사 바깥에서 살길을 찾지 않을까? 그건 이기적인 것도 아니고 버릇없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생존 방식일 뿐.
나는 바란다. 적당히 일해도 괜찮게 살 수 있고, 열심히 사는 게 선택과 자유의 영역일 수 있기를. 부캐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부캐라는 일견 가벼워 보이는 단어에 많은 것들이 가려져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누군가에게 부캐는 놀이일 수 있겠지만, 생존에 대한 불안으로 살길을 찾아 나선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부캐 또한 다른 노동과 다르지 않을 테니.
설령 모든 걸 감당할 수 있어 도전한다고 해도 지속가능한 부캐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 부캐 하나 만들지 못했다고 자신을 힐난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새로운 일을 자연스레 찾아 나설 수 있을 때까지, 편안한 마음으로 충 분히 쉬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 나 역시 부캐를 찾을 때까지 몇 년간은 퇴근 후 매일같이, 꼼짝없이 누워 있었던 시간이 있었으니까.
최근 새로운 목표 하나를 세웠다.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는 적당히 하되 죄책감 가지지 않기'다. 즐거우려고 시작한 취미활동이 부캐가 된 일은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 인생의 커다란 행운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일의 영역으로 들어오자 나도 모르게 강박적으로 매달렸던 것 같다. 특히 다른 부캐러들과 비교하는 일이 잦았다. 저 사람도 나도 같은 회사원인데, 그와 비교해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한 경우에는 조바심이 들었다.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과 과도한 의욕으로 책임지지도 못함 일을 덥석 맡기도 했다. 그렇게 역량 밖의 일을 해내느라 몸을 혹사해야 했다. 좀 더 열심히 잘하면 나도 인생이 바뀔까, 그런 생각도 했었다. 분명히 그러려고 시작한 취미가 아닌데 말이다. 진심으로 즐거워서 하던 취미가 짐처럼 느껴지거나 아무것도 쓸 수 없는 날이 눈에 띄게 늘어날 때면 내가 너무 한심했다.
'어서 뭐라도'의 덧에 걸려 헤어 나오지 못한 시간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렇게까지 못하고 잘할 것도 없는데, 나한테는 어차피 본캐가 있고 그 일을 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나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지나치게 불안해하지 않고 사랑하는 법을 익혀나가고 싶다. 부캐 인생 제2라운드는 적당하고 즐겁게, 그렇게 계속해서 목욕 덕후이자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위의 부분은 부캐를 찾아 헤매는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책에서 그대로 해주는 듯했다.
젊은 세대에게 부캐는 돌파구가 될 수도 있고, 생존법일 수 있다.
기성세대가 꾸준히 한 우물에서 노력하면 성공한다 라는 공식이 통하였다면, 더 이상 우리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는 회사일뿐이고, 나를 책임져주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계약에 의해 맺어진 나를 어떻게 하면 더 뽑아내서 굴려볼까를 생각하는 곳이겠지. 그렇기 때문에 회사 내부에서 자아실현을 꿈꾼다기보다는 바깥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보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스스로 짊어져야 하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부캐라는 것은 특이한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생성된 또 다른 자아이다.
그렇지만 '어서 뭐라도'라는 쳇바퀴의 덫에 걸려서 새롭게 만드는 나의 자아를 잃어버리기보다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꾸준히 하는 부캐를 만들어 가고 싶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는 자라면서 일이란 가치 있는 거라고 배웠다. 그렇게 믿도록 교육받았다. 그리고 나는 그 교육에 깊이 감화된 사람이었다. 일에 관해서만큼은 이상 주의자였다. 미국의 노사관계 연구자인 존 버드 교수에 따르 면 일을 정의하는 개념에는 총 열 개의 갈래가 있다고 한다. 저주, 자유, 상품, 직업시민권, 비효용, 자기실현, 사회적 관계, 보살핌, 정체성, 봉사. 그때의 내게 이 중에서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면 자기실현과 정체성, 사회적 관계와 자유라고 답했을 것이다. 일은 자아실현이 아니라고들 하지만, 작은 재능을 갈고닦아 자기만의 자리를 만들어내는 건 결코 자기와 분리될 수 없지 않은가. 들 입(入)에 직분 직(職), 즉 입직은 직업에 들어간다는 뜻이지만 나는 오랫동안 설 립(立) 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의 많은 이들과 연결되며 곧게 서 있을 수 있는 자리, 그게 일이라고 여겼다.
(중략)
알랭드 보통이 [일의 기쁨과 슬픔](2012)에서 의사나 콜카타의 수녀나 과거의 거장만이 일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비스킷 공장에서 과자를 굽더라도 사람들의 아침 공복을 달랠 수 있다면 그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 사람들에게 유용하고 뜻있는 것을 줄 수 있고 그러면서도 나를 오롯이 책임질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할지도 모른다.
물론 일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게, 특히 요즘 들어선 쿨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우리는 모두 너무 충분히 일해 왔고, 일에 매몰되기 쉬운 환경에 있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게 대세인 것 같다. 워라밸이나 번아웃이 화두인 만큼, 일과 나를 분리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그 어느 때보다 많다는 것도 절감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역으로,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일과 나 사이의 건강한 거리 유지가 가능하 다고 믿는다. 어쨌든 회사는 사회적 지위는 물론이고 가장 소중한 고정 수입을 주는 곳이다. 당연히 이곳에서 에너지도 마음도 많이 소진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왕 해야 하는 노동이라면, 그 속에서 내 자리의 의미를 세울 수 있다면 훨씬 좋지 않을까.
쉽지 않다는 건 잘 안다. 정당한 보상과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기여도와 직업윤리 모두를 갖춘 일터가 얼마나 되겠는 가. 나도 어느덧 직장생활 10년 차가 됐다.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기성세대이자 누군가의 선배인 게 더 익숙해질 것이다. 그리고 윗세대가 만들어놓은 불합리한 구조와 문화를 영영 탓할 수만은 없게 될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냉소하고 싶지는 않다. 크고 작은 부조리 속에서 우리의 영역을 지켜내고 싶다. 내가 하는 일이 세상 누군가에게는 유용하고 뜻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말이다.
지금보다 더 시간이 지난 뒤에 나는 이런 사람이고 싶다.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함께 얘기 나눌 수 있는 사람. 하찮고 귀찮은 일 속에서도 그 일만의 가치를 발견하고 풍성하게 꾸려나갈 수 있는 사람. 아직은 일이 재미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렇지만 일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기에, 여유를 갖고 일 바깥의 자신도 돌볼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사는 게 즐거운 사람. 얼마나 오래 일할 수 있을지, 아니 얼마나 오래 일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세상이다.
수명은 늘고, 세상은 너무 빨리 바뀌어 많은 일이 사라지고 태어나기도 한다. 마치 내 이름 뒤에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던 직함처럼. 그 이름들은 계속해서 존재할 수도 있고, 갑자기 혹은 서서히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살아 있는 한은, 그 이름의 위치와 권력과 관계없이 나에게도 가치 있고 타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들을 이어가며 살고 싶다. 굴레도 꿈도 아닌, 그 경계를 가로지르며 나와 세상을 연결해 주는 일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사랑하며 살고 싶다. 그렇게 다짐하며 오늘도 내일도 출근하고 퇴근할 것이다.
두 번째는 일에 관한 이야기이다. 처음으로 입사했던 회사에 내년이면 벌써 10년이다. (세월아)
이렇게 오래도록 이 회사에 몸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었는데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그러다 보니 시원섭섭한 양가감정이 항상 있다.
내가 우리 회사를 표현하는 것이 있는데 '참을만한 썩음'이다.
어느 회사나 장단점이 있는데 딱 우리 회사는 그 단점의 정도가 회사를 그만둘 정도는 아니다.
보상이 적다는 점이 큰 불만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또 지방러로 주위 회사를 둘러보면 더 한 곳이 차고 넘친다.
물론 내가 회사에 오래 있다 보니 좀 둔감해져서 그렇다고 하면 할 말이 없다.
회사에 있으면 독소가 쌓인다. 어떻게 이렇게 좁은 회사에 독소 쌓일 일이 많은 지 신기할 정도.
가끔씩 옷을 툴툴 털어내줘야지 몸속으로 스며들까 봐 걱정이 될 정도기도 하다.
근데 이와 별개로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누군가에게 유용함과 뜻깊음이 되고자 한다.
물론 회사 내 개개 또라이들을 다 감당할 수는 없겠지만, 내 일에서 만큼은 빈틈없이 처리하고자 하며, 그룹원과도 조화롭게 이루어서 프로젝트들을 수월하게 완수하고자 한다.
일하는 순간에는 집중하고, 일이 순탄하게 잘 굴러갔을 때 보람감을 느끼고 회사를 나오는 순간 샷다를 내리는 순간을 아주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일하는 순간에서 어떻게든 일을 안 하려고 하는 직원들을 볼 때마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보게 되는 건 참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면서 퇴근 시간쯤 돼서야 일을 시작하고 나 또 야근이야 말하는 사람은 참 ^^ .. 나와는 일의 의미가 엄청나게 다른 사람이겠지?
누군가 처럼 워커홀릭을 자처하며 일하는 나에 취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일의 의미를 가지고 맡은 업무를 업무 시간 내에 성실히 임하는 것은 직장인으로 가져야 할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퇴근하면 나는 내 안락한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책 속에서 얘기한 것처럼 일을 정의하는 총 열 개의 갈래 [저주, 자유, 상품, 직업시민권, 비효용, 자기실현, 사회적 관계, 보살핌, 정체성, 봉사] 중에 나는 어떤 정의를 내리고 있을까. 사회적 관계, 봉사, 직업시민권 정도에 해당되려나.
이렇게 책 속에서 나에게 와닿는 부분은 두 가지였다.
(+ 약간 엥? 스러웠던 부분은 여자애는 대학을 서울로 보내면 안 된다 와 같은 부분이었는데, 저자는 본인이 대학을 가던 시기가 여자애들을 서울로 보내지 않는다라고 표현하고, 지방대에 입학했을 때, 친구들과 이 부분을 공감했다고 서술했다. 그렇지만 저자가 나와 같은 나이라면, 나는 전혀 그런 지역과 시대에 살지 않았다. 오히려 본인의 역량을 펼 수 있다면 서울을 가는 것을 응원해 주던 분위기였는데. 같은 지방러 같은 시기여도 집안마다 분위기는 참 다르구나 싶었달까.)
무튼 에세이를 읽으면 항상 공감대와 반발심을 같이 가지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좋은 어른의 의미에 대한 저자의 해석은 당당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젊은이로 느껴졌다.
어쩌다 보니 결혼하고, 아기가 생긴 내 삶은 홀로서기와는 아주 멀어졌지만 (ㅎㅎㅎ)
스스로를 사랑하고 타인과도 나눌 줄 아는 그런 당당한 어른이 되고 싶다.
가볍게 읽기에 좋은 에세이.
리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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