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없는 사회 / 한병철 / 이재영 옮김 / 김영사
한병철
1959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했고, 브라이스가우의 프라이부르크대학교와 뮌헨대학교에서 철학, 독일문학, 가톨릭 신학을 공부했다. 베를린예술대학교 철학·문화학 교수를 지냈다. 전 유럽과 한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피로사회>를 비롯하여 <폭력의 위상한> <땅의 예찬> <투명사회> <심리정치> <타자의 추방> <시간의 향기> <에로스의 종말> <아름다움의 구원> <선불교의 철학> <권력이란 무엇인가> <죽음의 타자성> <하이데거 입문> <헤겔과 권력> 등 예리하고 독창적인 사회 비평서와 철학책을 썼다.
책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은 들어봤을 책 <피로사회>. 과도한 성과주의 시대에 스스로를 피로하게 만드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잘 담겨있어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도서이다. 나 역시도 피로사회를 처음으로 한병철 님의 책을 시작하였다. 물론 그 당시 독서力이 부족한 나였기에 아차하면 이해를 못하고 다시 앞 줄을 읽어야 했지만, 글 한 줄 씹어가면서 읽어져 내려가는 글맛이 있어 너무 좋았었다. 그 이후로 <에로스의 종말>, <시간의 향기>,<권력이란 무엇인가> 등이 나올 때 마다 야금야금 정복해 나가는 기쁨을 누렸다.
그리고 오랜만에 손에 잡은 책 <고통없는 사회>.
최근에 삶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 하는 쇼펜하우어에 대해서 읽어보다가 자연스럽게 한병철 님의 책으로 연결되었다.
작가는 어떠한 시각을 가지고 고통을 바라보았을까?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고통없는 사회
명사로 몸과 마음의 괴로움과 아픔을 뜻한다.
사람들은 '고통'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슬슬 피하게 되는 그런 존재라고나 할까?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가기 바쁘고, 이미 충분히 힘든 사회의 구성원들은 더 이상 고통을 원하지 않고, 오히려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꿈꾼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고통은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마이너스 이미지를 가진 의미이다.
오늘날의 고통공포는 패러다임의 전환에서 기인한다. 우리는 모든 부정성의 형식을 떨쳐내고자 하는 긍정성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고통은 부정성 그 자체다. 심리학 또한 이 패러다임의 전환을 추종하여 “고통의 심리학”인 부정심리학에서 평안과 행복, 낙관주의를 다루는 “긍정심리학”으로 넘어간다. 부정적 생각은 피해야 한다. 즉시 긍정적 생각으로 대체해야 한다. 긍정심리학은 고통마저 성과 논리에 종속시킨다. 회복력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는 트라우마의 경험을 성과 향상을 위한 촉매로 만든다. 심지어 트라우마 뒤에 오는 성장이라는 말까지 사용되고 있다. 영혼의 힘을 훈련한다는 회복력 트레이닝의 목표는 인간을 최대한 고통에 무감각하며 언제나 행복한 성과주체로 만드는 데 있다. p.11
고통은 부정하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마인드가 더 중요한 사회. 바로 지금 사회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져가며 글을 진행해 나간다. 고통을 부정하는 '진통사회'와 '긍정심리학'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다.
진통사회는 좋아요의 사회다. 진통사회는 좋음의 광기에 빠진다. 모든 것이 만족감을 줄 때까지 매끄럽게 다듬어진다. 좋아요는 우리 시대의 징표이자 진통제다. 좋아요는 소셜미디어뿐만 아니라 문화의 모든 영역을 지배한다. 어떤 것도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된다. 예술만이 아니라 삶 자체가 인스타그램에 적합해야한다. 다시 말해 고통을 줄 수 있는 모서리나 귀퉁이, 갈등이나 모순이 없어야 한다. 고통이 전화한다는 사실을 잊혀진다. 고통은 카타르시스적인 작용을 한다. 민족의 문화에는 카타르시스의 가능성이 빠져 있다. 그 결과 우리는 민족 문화의 표면 아래쪽에 쌓이는 긍정성의 찌꺼기에 에워싸여 질식한다. p.12~13
고통 없는 진통사회의 SNS에는 싫어요는 없고, 좋아요라는 긍정의 하트만이 있다. 어딜가서 무언가를 느끼면 '인스타그램각이네.', '인스타 갬성이다' 이런 말들을 쉬이 주고 받으면서, 가벼운 즐거움에 빠져있다. 재미있는 릴스를 보다보면 우리는 어느새 본질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시간가는 줄 모르고 '좋아요' 굴레에 빠지기 쉽상이다. 유튜브에도 숏츠가 중심이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아드레날린이 저절로 붐비되는 콘텐츠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고 있다. 물론 우리는 댓글 기능을 통해서 문제가 있는 사안에 대해 우리의 의견을 충분히 문제 상황들을 표출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주 관심사는 그러한 문제에 집중한 토론보다는 SNS에서 가벼운 즐거움, 좋아요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행복하라는 것이 새로운 지배공식이다. 행복의 긍정성이 고통의 부정성을 밀어낸다. 행복은 긍정적인 감정 자본으로서 성과 능력이 약화되지 않고 계속 발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기 동기부여와 자기 최적화는 신자유주의적 행복장치가 매우 효율적으로 작동하게 해두는데, 큰 비용을 전혀 치르지 않고도 지배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속된 자는 자신이 예속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자유로운 줄 안다. 외부의 강제가 전혀 없는데도 그는 자아실현을 하는 줄 알고 자발적으로 자신을 착취한다. 자유는 억압되는 것이 아니라 착취된다. 자유로우라는 말은 복종하라는 말보다 더 파괴적인 강제를 낳는다. p.21
'고통'이 부정성을 의미한다면, '행복'은 우리 사회에서 긍정의 의미로, 추구하는 지향점 같은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오히려 '행복'에 대해서 비판적인 관점을 가진다. '행복'이 가진 본질적인 의미가 아니라, 현대 사회의 주요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행복'이 도구이자 장치로 자리잡게 되는 것을 비판한다. 현대 사회에서 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사람들이 현재 행복하고 자유롭다라는 착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비슷한 결로 느껴진다. 우리가 스스로를 착취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 뒤쳐지지 않는 것,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 자기 파괴를 일삼는 것은 <피로 사회>에서도 자주 언급된다.
왜 고통이 중요한가
작가가 사회에서 긍정적 의미를 가지는 '성과, 행복, 좋아요, 진통'을 비판하고, 사람들이 기피하는 '고통'에 집중하는 것은 왜 일까? 그는 우리가 고통을 느끼는 것이 해결해야할 문제가 있음을 알리고, 우리가 이를 해결하게 만드는 신호라는 것이다. 우리가 고통을 회피할 수록 우리는 문제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상황이 심각해지면 더 우리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그렇기에 단순히 고통을 부정하고 회피만 할 것이 아니라 대처해 나가야되는 것이다.
모든 진실은 고통스러운데, 진통사회는 진실 없는 사회이며, 같은 것이 지옥이다. 모든 고통스러운 상태를 거부하는 사람은 결속 관계를 맺을 능력이 없다. 고통은 삶을 분절화하여 표현하는데 고통이 없다면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고통없는 세상은 무차별성을 특징으로 하여 같은 것이 지옥에 빠지게 되고 독특함을 소멸시킨다. 고통 속에서 현실을 지각하는데, 진통사회에서는 지속적 마취로 세계를 탈현실화 시킨다. 지속적인 좋아요는 둔감함을, 현실의 해체를 낳는다. 고통은 자기 지각을 강화한다. 고통은 자아의 모습을 드러낸다. 진실로서의 고통 中
우리가 의식적으로 고통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회피해왔던 것들은 사진 우리가 직면하고 해결해야할 진실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삶의 굴곡짐을 분절화해서 알 수 있는 지표로서 고통을 활용해나가야 하지만, 이를 은폐하고 억압하고 있는 상태다. '긍정의 심리학'은 이러한 점에서 비판점을 가지는 데, 고통의 원인이 되는 사회의 원인에 다가가지 못하고, 개인에게서 그 원인을 찾고자 한다. 우리의 마음을 고치면 고통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긍정의 심리학은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 아닌 단순히 상황을 모면하는 '진통'일 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고통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해야되는 중요한 신호로 여기며, 주체적으로 대응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지난해는 개인적으로 엄청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중 몇 개월은 스스로에게 '고통' 그 자체 였다. 개인적인 가치관과 사상이 뒤흔들렸고 매우 심리적으로 불안했으며, 잠을 못자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내가 겪었던 그 시기들이 내가 해결해야될 문제들을 크게 직면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회피해왔던 관계 속 진실들을 앞에 두고 하나하나씩 해결해가는 것. 그 과정이 작년이 아니었을까.
무비판적인 긍정 보다는 현실에 맞서는 고통이 우리의 삶을 더 의미있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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